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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디자이너라는 병목

AI는 이미 아이디어 발상부터 이미지·영상 생성까지 디자인 워크플로 안에 들어왔지만, 그대로 쓴 결과에는 반복되는 ‘지문’이 남음토스의 그래픽 디자인은 직관성·심미성·일관성을 함께 다루며, 데이터로 확인할 부분과 디자이너의 직관으로 결정할 부분을 구분함AI는 널리 선호되는 평균에 강하지만, 인간은 그 평균에서 벗어난 불완전함을 의외성과 유일성으로 읽을 수 있음구현이 쉬워진 뒤 인간 디자이너에게 남는 일은 문제를 정의하고, 실패로 안목을 기르며, 결과를 멈추고 세상에 내보낼 책임을 지는 것임

원문 보기 — 토스 Groun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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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생성기의 등장은 그래픽 디자인의 큰 변곡점이었다. 토스 비주얼 디자이너 고현선은 그 시점을 2021~2022년 무렵으로 본다. 최근 1년은 새로운 변곡점이라기보다, 이미 시작된 변화가 폭발적으로 커진 시기에 가깝다는 설명임.

처음 충격은 완성도보다 속도에서 왔다. 손가락이 여섯 개거나 팔이 꼬여 있어도 무드를 확인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오래 그려야 볼 수 있던 아이디어를 몇 문장으로 빠르게 시험할 수 있게 됨.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고현선은 작업 전 과정에 더 자주 개입하고, 마지막에는 결과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지 판단해 생성을 멈춘다.

01. AI는 아이디어 도구를 넘어 작업 환경이 됐다

고현선은 토스의 다음 그래픽 방향을 고민하던 당시 미드저니로 무드보드와 초기 아이디어를 시험했다. 예를 들어 “애플이 디자인한 만 원짜리 지폐”처럼 궁금하지만 직접 그리려면 오래 걸리는 조합을 입력하고, AI가 애플의 조형적 특징을 어떻게 끌어오는지 살폈다. 결과의 마감보다 융합하고 분해해 새로운 톤을 빨리 보는 능력이 중요했다.

지금은 AI가 작업의 일부가 아니라 워크플로 안에 깊이 들어왔다. 영상 생성에는 Kling AI를 많이 쓰고, 사고와 이미지 생성에는 Claude·Gemini·GPT를 성능 변화에 따라 조합한다. 처음에는 Claude와 사고하고 Gemini로 이미지를 만드는 비중이 컸지만, GPT의 이미지 성능이 좋아진 뒤 사용 방식도 달라졌다. 키 비주얼을 처음부터 그리고 모션까지 직접 만드는 일은 크게 줄었다고 말함.

그렇다고 생성물을 그대로 최종 결과로 쓰지는 않는다. AI 결과에는 특정 모델의 레이아웃과 표현이 반복되는 ‘지문’이 남는다. 발표 자료의 모서리 장식, 페이지 번호, 소제목 위치처럼 처음에는 새로워 보였던 형식도 여러 사람이 쓰기 시작하면 금세 알아볼 수 있는 패턴이 됨. 고현선은 생성 결과를 참고하되, 사람이 봤을 때 완성된 이미지가 되도록 다듬는 단계는 여전히 자신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02. 좋은 결과는 한 번의 프롬프트보다 잦은 개입에서 나온다

처음 쓴 프롬프트가 콘셉트·직관성·아름다움을 한 번에 충족할 가능성은 낮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면 AI는 자신이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그 흐름에 인간이 끌려간 흔적이 결과에 남는다. 고현선은 모든 과정에 사람이 자주 개입할수록 품질이 좋아진다고 본다. 끝내주는 프롬프트 하나로 100개를 만든 뒤 고르는 방식보다 계속 주고받는 상호작용에 가까움.

대가의 작업 과정도 출발점에서 결과까지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실패하고, 엎고, 다시 시도하는 동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이 작동한다. 작업물과 노하우를 전부 학습시켜도 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판단까지 모두 언어화할 수는 없다는 것.

반대로 “AI는 타이포그래피의 미세한 차이를 절대 모른다”처럼 특정 능력의 한계를 단정하는 태도도 경계한다. 사람이 각도와 차이를 설명하고 비교 사례를 줄 수 있다면 AI가 그 간극을 좁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5년 안에는 AI가 세리프의 각도 같은 디테일까지 보는 눈을 상당히 키울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AI가 비교적 빠르게 익힐 수 있다는 것. 더 어려운 일은 아직 누구도 문제라고 부르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일임.

좋은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이 문제없이 받아들인 로고에서도 브랜드가 줘야 할 인상이 빠져 있다는 문제를 발견한다. 무엇을 문제로 볼지 정해야 해답도 달라진다. 그래서 디자인에서는 만족하지 않는 능력과 계속 문제를 찾는 습관이 역량의 출발점이 됨.

03. 토스의 그래픽은 직관성·심미성·일관성을 함께 다룬다

고현선이 신규 입사자에게 설명하는 토스 그래픽 디자인의 기준은 세 가지다.

  • 직관성 — 글을 모두 읽지 않아도 그림만으로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함
  • 심미성 — 화면을 본 사람이 토스를 부드럽고 잘 만든 브랜드로 느끼게 해야 함
  • 일관성 — 어느 화면에서도 지금 토스를 쓰고 있다는 인상이 이어져야 함

직관성은 실제 사용자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은 iOS와 Android의 공유 아이콘이 다르다는 사례를 든다. 아이폰을 오래 쓴 디자이너에게 익숙한 화살표가 Android 사용자에게도 같은 의미로 읽히는지 단정할 수 없으므로, 두 아이콘을 사용자가 공유로 인식하는지 조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잘못된 상황에서 경고처럼 보이는 그래픽을 써 사용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도 직관성을 해치는 사례임.

심미성은 정성적인 영역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아무 스타일이나 예쁘다는 이유로 가져올 수는 없다. 뉴진스나 젠틀몬스터의 미감을 그대로 토스에 적용하면 일관성이 깨질 수 있다. 토스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조직 안의 합의가 필요함.

세 기준은 체크리스트처럼 차례로 더하는 것도 아니다. 직관성을 먼저 해결한 뒤 심미성을 얹으면 뻔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심미적인 발상에서 시작해 직관성을 확보하는 편이 더 잘 작동할 때도 있다. 아름다우면서 전달력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디자이너의 직관이 이 기준들을 하나의 결과로 묶는다.

04. AI는 ‘평균의 천재’지만 평균 밖의 매력을 고르지 못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뒤 바둑에서는 AI가 제안하는 수가 곧 이기는 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자인은 점수로 승패를 가르는 경기가 아니다. 그래도 고현선은 AI가 지금 ‘이기는 디자인’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좋다고 느끼는 결과의 평균값을 계속 내놓기 때문임.

문제는 널리 선호되는 답이 항상 가장 매력적인 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가의 결과물에는 완전함에서 조금 벗어난 부분이 있고, 그 삐끗함이 의외성과 충격, 유일성으로 읽힌다. AI는 그 지점을 점수를 깎는 결함으로 볼 수 있지만 사람은 거기서 끌림을 느낀다. AI가 정답에 가까운 디자인을 줘도 인간은 때로 정답보다 더 정답인 것을 원한다는 설명이다.

AI가 강한 쪽은 많은 사례에서 반복되는 일관성이다. 고현선은 이를 두고 AI를 “평균의 천재”라고 부른다. 좋은 사례가 충분히 축적된 스타일을 계속 생산할 때는 사람보다 규칙을 더 엄격하게 지킬 수도 있음.

하지만 기존 3D 그래픽을 유지할지, 새로운 표현으로 넓힐지는 규칙 준수와 다른 결정이다. AI가 다음 스타일과 최신 트렌드를 제안할 수는 있다. 그래도 회사의 분위기, 동료와 쌓은 맥락, 조직이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고려해 제안을 수용하거나 거절하는 일은 인간에게 남는다.

그 거절이 언제나 더 나은 판단인 것은 아니다. AI가 과감한 안을 내도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없거나, 자신의 생각 안에서 귀찮은 부분만 대신해 주길 바랄 수 있다. AI가 도착지를 제시해도 사람은 그곳까지 가는 논의와 의사결정의 경로도 필요로 함.

05. AI가 주니어에게서 빼앗는 것은 실패할 기회다

고현선은 디자이너 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변화를 체감한다고 말한다. 그 충격은 이제 막 안목을 키워야 할 주니어에게 특히 가혹하다. 시니어는 결과를 보는 안목이 있고 AI도 잘 다룰 것이라는 신뢰를 받지만, 기업은 신입을 왜 채용해야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완성도가 높은 생성물은 학생과 주니어를 압도하고, 디자인을 배우기보다 AI를 잘 쓰는 것이 유일한 길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음.

AI에 “나는 아닌데요”라고 저항하거나, 일부러 삐뚤게 보고 낮은 점수의 안을 발전시키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높은 점수를 받을 법한 결과에 종속될수록 그 범위에서 비껴나갈 안목이 좁아진다는 것. 고현선도 이에 동의하며, 대충 요청한 뒤 100번 생성해 우연히 괜찮은 하나를 찾는 방식을 경계한다. 그 경우 디자이너는 AI가 만들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임.

좋은 레퍼런스를 보는 일은 과거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많이 본다고 모션을 잘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 만들고, 실패하고, 왜 실패했는지 생각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안목이 따로 있다. AI가 창작의 중심에 들어올수록 실패도 대신하고, 사용자는 실패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된다. 결과적으로 디자인 근육을 기를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임.

고현선이 제안하는 훈련은 거창하지 않다. 문제없이 쓰던 제품도 자신이 리뉴얼한다면 무엇을 문제로 볼지 정해 본다. 좋은 작업을 보고 왜 좋은지 말해 본다. 더 나은 결과를 직접 만들며 실패해 본다. 구현 도구를 익히는 시간은 줄일 수 있어도 문제를 찾고 판단하는 훈련까지 건너뛸 수는 없다.

06. 안목은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구현 능력만으로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질수록 안목의 비중은 커진다. 유명 에이전시에 수억 원씩 맡기는 이유도 손기술만이 아니라, 그들이 내린 디자인 결정이 맞을 것이라는 신뢰에 가깝다.

영상은 안목을 두 단계로 나눈다. 먼저 좋은 것과 나쁜 것, 브랜드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AI가 쏟아낸 수만 개 가운데 정말 남다른 하나를 찾거나, 원석을 더 좋은 결과로 바꿀 수 있어야 함.

고현선은 노력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좋고 나쁨을 아는 사람도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그런 사람이 아니어도 안목은 훈련할 수 있다고 봄. 좋은 것을 보고 써보고 만지는 경험도 그 방법이다. 학생 시절 교수에게 백화점의 고급 시계를 직접 차보고, 평범한 시계와 비슷해 보이는 물건에 사람들이 왜 수천만 원을 내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 단순히 “예쁘다”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역사·브랜드가 만드는 차이를 해석하는 과정이 안목을 기른다는 뜻이다.

AI가 만든 20개 시안이 모두 미묘하게 괜찮아 보일 때의 판단도 선명하다. 고현선에게 정말 좋은 안은 오래 고민하게 만드는 ‘오묘한 것’이 아니라 보자마자 “이거다”라고 알아볼 수 있는 것에 가깝다. 모두 애매하다면 그 안에 답이 없거나, 아직 더 다듬어야 할 원석만 있는 상태임.

07. 과정에서는 유연하고, 마지막 결정에서는 단단해야 한다

고현선은 현재의 인간 디자이너를 언어 모델과 이미지 모델 사이의 통역가에 비유한다. ‘심플함’이라는 한 단어에도 무수한 시각적 해석이 있다. 그중 어떤 심플함이 지금의 배경과 콘셉트에 맞는지 결정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번역하는 일이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임.

반면 여러 도구와 구현 기술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구현 장벽이 낮아지면서 직관이 좋은 사람도 이전보다 쉽게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구현 능력이 안목의 빈자리를 가려주던 시기가 끝나고 있다는 주장에 가깝다.

자기 의도가 분명해도 AI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기회는 열어 두어야 한다. 그 제안을 실제 결과에 쓰지 않아도 모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고현선은 결정할 때는 단단하고, 만드는 과정에서는 유연한 편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A부터 Z까지 시험한 뒤 A로 돌아가는 것과 처음부터 A만 해보는 것은 결과가 같아도 디자이너의 시야가 다름.

08. 인간 디자이너는 결과를 멈추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영상의 마지막 질문은 인간 디자이너가 왜 필요한가다. 고현선의 답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 의뢰인은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내린 결정을 신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일을 맡긴다. AI가 효율적으로 결과를 만들 수는 있어도, 그 결과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게 하고 설득하는 역할까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사람은 중간중간 AI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는다. 마지막에는 이 정도면 세상에 내보내도 된다고 결정하고, 그 선택을 동료와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한다. AI는 피드백을 반영해 끝없이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인간은 ‘여기가 정답’이라고 선언하며 생성을 끝낼 수 있다.

그 판단이 반복되어 패턴이 되면 다시 자동화할 수 있다. 이미 답을 아는 일을 계속 손으로 되풀이하지 않고, 사람은 새로운 문제에 시간을 쓰는 것. 영상이 그리는 인간 디자이너의 역할은 AI보다 더 오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 개입하고 무엇을 반복하지 않을지까지 결정하는 사람임.

crit의 관점

AI가 끝없이 새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면, 디자이너의 일은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어느 순간 이걸로 됐다고 멈추는 쪽에 가까워진다. 마지막 결과에 자기 이름을 걸 수 있는 사람, 그게 이 영상이 말하는 인간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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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이미지 — 토스 Groun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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